간호사 신문 [독자 기고] 변화의 한가운데서 간호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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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방문재택간호사회 작성일 2026-07-29 13:51 조회 2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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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법 제정을 함께 축하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훌쩍 지나갔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는 산아 제한 정책에서 저출산·초고령화 대책에 이르기까지 급격한 변화를 겪었고, 의료·간호계는 도약을 위해 끊임없이 몸살을 앓아왔다. 이제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지혜로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차근차근 간호 백년대계를 준비해야 할 때다.
어젯밤에도 노인간호사회 재가분야회 임원들은 초고령사회 대비 정책의 구체적 실무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늦은 시간까지 줌(Zoom) 회의를 이어갔다. 회의 방식마저 초고속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나의 간호사 경력은 1976년, 보건소 가족보건계 행정직이 전문직 간호사로 전환되면서 시작됐다. 첫 임무는 출산 억제 정책이었다. 가족계획연구원과 세브란스병원 수태조절실에서 교육을 받은 뒤, 읍·면 단위 장터를 돌며 가족계획 계몽과 루프 시술을 맡았다. 미혼의 몸으로 쉽지 않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값진 경험이었다.
1977년에는 의사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농어촌특별법에 따른 무의촌 의료 시범사업이 시작됐다. 전국에서 선발된 25명의 지역사회 보건의료 간호사(CHP)는 1년간 훈련을 받고 전라도 옥구, 강원도 홍천, 경상도 군위 등지에 배치됐다. 그들은 1차 진료, 가정 분만, 결핵 관리, 모자보건, 가족계획 등 폭넓은 업무를 수행했고, 이는 오늘날 지역사회 통합보건의료와 보건진료원 제도의 기초가 됐다.
이후 병원 3교대 근무를 거쳐 울산의 다국적 기업 듀퐁(DuPont)에서 산업간호사로 일했다. 직원 건강관리와 위험물질 노출 예방에 간호사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산업간호사의 역할이 정립되고 산업간호사회가 결성되는 데 기여했다.
1997년에는 가정전문간호사와 정신보건간호사 과정을 마쳤고, 2003년 원격의료법 제정 이후에는 심장질환자를 대상으로 한 ‘365일 콜 시스템’에 참여했다. 심전도 교육과 간호사 수련을 맡았는데, 지금처럼 웨어러블 기기와 첨단시스템이 일상화된 시대를 그때는 상상할 수 없었다.
1998년 간호사에게 독립 개원 자격이 주어지면서 국내 최초의 너싱홈이 문을 열었다. 나 또한 2005년 가정전문간호사 실무 경험을 살려 노인복지법에 따른 너싱홈을 개원했고, 이는 2008년 장기요양보험 제도의 제도화 과정에서 초석이 되었다고 자부한다.
돌아보면 무의촌 해소 정책부터 생애 말기 돌봄까지, 간호는 언제나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 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분이 고(故) 김모임 박사님이다. 2019년부터 요양·간호 서비스에 함께 참여하게 된 것이 인연이었고, 박사님은 생애 마지막 순간을 ‘내 집에서’ 간호와 의료서비스를 받으며 철학을 몸소 보여주셨다.
그분의 삶은 간호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금 일깨워준다. 나 또한 베이비붐 세대에서 이제 실버세대가 되었지만, 앞으로도 간호는 인류와 함께 영원할 것이다. 우리는 간호의 본질을 잊지 않고 초고령사회를 현명하게 준비해야 한다. 나와 인연을 맺은 모든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장유호(노인간호사회 재가분야회 이사·은평구강안홈케어 원장)
출처 : 간호사신문(https://www.nursenews.co.kr)




















